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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07 15:53
제목 「근대 한국지식인의 서구 ‘사회과학’ 이해와 지적 계보」 학술회의 참관기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한국사회기반연구지원사업(SSK) '한국 사회과학' 연구 사업단
2012년 학술회의
2012427() 10:30~ 18:00 연세대학교 연희관 201
 
 
“double or triple translation”꼼꼼함의 미덕
근대 한국지식인의 서구 사회과학이해와 지적 계보학술회의 참관기
홍정완 (연구보조원)
 
 
2012427일 금요일, 학술적인 이야기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콘크리트건축물 실내공간에 가기에는 따뜻한 봄 햇살과 바람, 푸르른 나무들이 참으로 아까운 날이었다. 펼쳐진 유혹들을 지그시 누르며 향한 학술회의장.
가볍게 장소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연세대학교 연희관. 개인적으로 연희관과 그 주변의 풍광을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 이 건물을 이용하면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교직원전용화장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도 남성용(여성용 교직원 전용화장실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는 교직원 전용화장실이 존재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경험했던 다른 대학건물들과는 다르게 그와 같은 공간적 구분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회의장 상단을 장식하고 있는 역대 사회과학대학장의 사진, 사회과학대 입실조교의 존재 등과 결부시켜 보면 연희관, 그 속의 사람들과 제도들, 학풍과 학내 문화, 분위기로까지 궁금함은 확대되어 간다. 대학-학문-사회-() 연쇄들 속에서 연세대 연희관, 한국의 사회과학 학풍과 학맥, 교수-학생 관계와 공간 배치, 한국의 대학과 아카데미즘이 갖는 사회 속의 위상과 역할 등등.
학술회의의 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학술회의는 근대 한국 지식인의 서구 사회과학이해와 지적 계보라는 주제 아래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부는 근대 전환기 한국 사회과학 형성의 대내외적 조건, 2부에서는 근대전환기 한국 지식인을 3가지 범주(개신유학자와 일본, 미국 유학)로 구분하고 각각의 사회과학수용에 담긴 특성, 마지막으로 제3부는 근대 서구와 일본의 사회과학이 갖는 역사적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전체적인 소감을 먼저 쓴다면 몇몇 발표들은 해당 주제에 관한 꼼꼼한 작업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전해주었지만, 대체로 각각의 주제들에 부합하는 문제의식의 예리함과 내용의 구체성 등에서 다소 아쉬움을 주었다.
 
 
1부의 첫 발표에서는 서구의 사회과학을 수용하게 되는 근대전환기 한국사회의 조건에 관한 발표에서는 당대 한국사회의 서구 문물 수용이 놓인 핵심적 의제로서 국가적 위기극복을 설정하고, ‘사회과학적 태도와 지식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또 다른 조건으로서 이중의 번역과정이 갖는 의미 등을 살피고 있다. 이에 대한 토론에서는 발표내용 중 갑오개혁을 평가하는 가운데 베버식 이분법을 적용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종래조선의 사회질서에 대한 서구’, ‘근대중심의 관점과 평가를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적인 질의가 있었다. 이후 이에 관한 토론이 가열되지는 않았지만, 발표를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은 이중의 번역문제도 매우 소략하게 처리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서구의 근대적인 정치학-법학-경제학의 필요성이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주장되었다는 것 이외에 발표 주제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관점이 수용되는 조건들에 관한 서술은 대체로 국가적 위기라는 차원으로 一躍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당대 식자층이 처한 정치-사회적 조건, 제반 국가정책과 새로운 지식의 접맥조건, ‘지식의 생산-유통-확산 조건 등등이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학술회의 발표 중에서 주제와 내용이 비교적 잘 부합하고, 내용의 꼼꼼함과 주장의 선명성, 깊이 있는 토론 등으로 인해 필자가 여러모로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은 메이지 사회과학의 특질, 그리고 일본 유학 지식인의 사회과학 수용을 다룬 발표-토론 내용 등이었다.
먼저 제1부에서 '사회과학'의 동아시아 수용과 메이지 일본 사회과학의 특질을 다룬 발표에서는 당대 청-조선-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회과학 수용과정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영향을 미쳤던 블룬칠리(J. C. Bluntschili) 국가학의 수용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메이지 일본의 관료층을 비롯한 지식인층들에게 블룬칠리 국가학은 천황제 국가체제성립의 주요한 지적 자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음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양계초의 블룬칠리 정치론수용과정을 검토하여 그가 일본의 수용 흐름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중국 사회가 처한 상이한 맥락으로 인해 블룬칠리의 국민민족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의 사상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발표에 대해 토론자는 먼저 메이지 사회과학을 독일 국가학으로 규정하는 발표문 기조에 대해 메이지 사회과학에 미친 자유주의적 사조의 영향과 당대 사회비판적, 현실비판적 성격도 함께 중시해야 함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발표내용이 블룬칠리 국가학 수용 문제를 주로 일본 천황제 국가체제성립, 특히 군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타당함을 수긍하면서도, 메이지초기 일본의 관료, 지식인층에게 군주제보다도 오히려 더욱 급박한 과제로 제기되었던 제 측면, 근대국가성립과정에 요구되는 제반 법적, 제도적 구축 작업에 블룬칠리 국가학/정치학이 어떻게 실무적으로 활용되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2부에서 일본 유학 지식인의 사회과학수용 문제를 다룬 발표는 주로 사회과학중에서 정치론, 정치학 분야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특성에 주목하였다. 발표자는 일본유학생들이 왜 서구의 정치’, ‘정치학에 관심을 가지고 수용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서구 정치학을 어떻게 의미화했는가, 마지막으로 그들이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한 입헌정치론에 내포된 특성들을 고찰하였다. 특히 필자에는 근대전환기 일본 유학 지식인층이 서구의 정치학에 대해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는가에 관한 발표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그 내용에 관한 발표자의 메타적 비평과 재의미화 작업이 다소 소략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발표에 이은 토론과 응답의 내용 또한 재미있었는데, 토론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타난 학문적 수용의 변화와 단계 설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제안과 함께 당시 유학생들의 서구 학문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번역과 연관된 문제에 대해 질의하였다. , 유학생들의 각종 서구 정치학에 관한 소개나 번역과정에서 수용주체의 문제의식이 투영된 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그 보다는 현상적으로 볼 때 유학과정에서 수강한 내용이나 교재, 서적을 그대로 번역(?)한 것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발표자는 안국선이 저술한 <<정치학>>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의 저술 또한 기본적으로 유학시절 접한 교재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도 입헌방식을 2가지 형태로 소개한 저본의 내용 중에서 구성적 방식의 헌법 제정에 대해서는 번역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당대 유학생들의 서구 학문 수용 과정에서 담긴 수용 주체의 문제의식이나 태도 등을 일정하게 추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근대전환기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필자가 학술회의장에서 인상 깊게 배웠던 부분을 추상적으로 요약한다면 이중, 삼중의 수용로(‘번역’)의 문제와 번역’/‘수용과정에 나타난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 수용/변용의 결을 읽어낼 때 필요한 꼼꼼함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