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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04 01:06
제목 제16차 사회인문학 워크숍 참관기 : 인민의 탄생



 



 
전통은 복권되었는가
- 16차 사회인문학 워크숍: 송호근, 인민의 탄생참관기
 
권 기 하
 
지난 327, 16차 사회인문학 워크숍이 연세대학교 위당관 국학연구원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촘촘히 놓인 접이식 의자들을 보니 넓지 않은 회의실에 보다 많은 이들이 자리할 수 있도록 주최 측이 고심한 듯 보였다. 그러나 워크숍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좌석이 부족해졌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청중들이 발표장을 찾았다.
이날의 발표자 송호근 교수는 서울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로서, 유력 언론의 칼럼리스트로서 이미 저명하다.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저널과 연구 양쪽에서 현실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보여 왔던 그였지만, 이채롭게도 이날의 텍스트 인민의 탄생은 조선시대를 다루고 있었다. 수년 동안 일간지를 통해 현재적 이슈에 대한 사회비평을 계속해 온 그가 문득 시선을 수백 년 전으로 옮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날 많은 발걸음을 발표장으로 유도한 궁금증이었을 터이다.
송호근 교수는 발표의 첫머리에서 사회학자이자 칼럼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체감해야 했던 당혹스러움을 그 이유로 설명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여론의 극심한 변동, 최근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불통의 문제. 그는 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인과적 분석과 타당한 해명을 제시해야 하는 사회과학자이지만, 한국 사회에는 단지 사회과학 이론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특성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심층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이러한 고민이 결국 역사 연구로 이어져, 인민의 탄생으로 출력되었다는 것이다. 현실 문제에 대한 분석에서 역사적 접근의 결여는 사실 한국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묵은 역사의식의 귀결이다. 발표자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과거는 서구적 근대를 낳는 데 실패했다는 죄로 인해 비정하게 단절되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되었다. “과거를 알기도 전에 과거를 죽였다는 표현은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의 치명적인 원죄를 폭로하는 듯이 들렸다. 과거를 알지 못한다면 현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이것이 인민의 탄생의 출발점이다.
이와 같이 시작된 송호근 교수의 여정은 곧 조선의 인민과 공론장을 향한다. 이는 그가 한국 사회의 여론형성 과정, 그리고 소통의 양상에서 난독의 증세를 느꼈고, 이것이 역사 연구로 이어졌음을 상기할 때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송호근 교수는 조선을 중세로 규정하였는데, 그 사회상에 대한 설명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통치, 종교 및 교화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었고, 나아가 이 세 분야는 성리학을 통해서 서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한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조선의 인민은 이 강고한 중세적 질서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조선은 오백여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강력한 안정성은 19세기에 이르러 훼손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처럼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이르러 조선은 붕괴되었다.
무엇이 균열을 가했는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통치, 종교, 교화의 삼위일체가 중세 국가 조선의 지배구조였다는 발표자 특유의 주장은 균열과 붕괴 과정에 대한 해명에서도 계속된다. 즉 조선의 붕괴 조짐 역시 교화, 종교, 통치의 세 분야에서 각기 설명되고 있었다. 송호근 교수는 한글 공론장의 형성, 카톨릭의 도입과 확산, 그리고 민란과 농민전쟁을 주목하고 있었다. 즉 한글이라는 새로운 언어는 교화를 위한 수단으로 창제되었지만, 의도와는 달리 대규모의 문해인민을 양산시켰고, 이들 문해인민이 새로운 언어를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가치관을 공유하는 대안적 공론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카톨릭 역시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가면서 성리학적 도그마를 훼손시켰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한글과 카톨릭에 의해 종교와 교화 영역에서 성리학이 가졌던 위상은 흔들리게 되었고, 그 위에서 진행된 민란과 농민전쟁이 중세 지배구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는 것이 인민의 탄생의 요지이다.
텍스트를 소개하는 내내 발표자의 자신감도 함께 발산되었다. 송호근 교수는 첫머리에서 국사학 연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즉 사학자들이 소재주의에 함몰되어 자신의 전공 시대, 영역에 함몰된 미시적 연구만을 생산하고 있고, 또한 결론을 예정한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목적론적 경향도 다분하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비판이 오해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그의 결론은 국사학 비판에 걸맞게 매우 거시적이었고, 기존 연구와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역사학 공부를 시작한 지 오래지 않은 발표자가 첫 연구성과에서 이처럼 대담한 시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에게는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의욕적인 담대한 시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결론이 모두를 설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발표에 이어 비평이 활기차게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두 시간 반 정도를 예상했던 워크숍은 30분 이상을 초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맺음 역시 사회자였던 박영도 교수의 직권에 의한 것이었다. 지정된 토론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청중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고, 오랜 시간 토론이 계속된 만큼 핵심적인 질문들도 많았다.
 

 
우선 첫 토론자인 나종석 교수는 인민의 탄생에서 설정하고 있는 중세와 근대의 연속/단절 문제를 파고들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송호근 교수는 인민의 탄생이 중세적 기원(문해인민과 한글 공론장의 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중세와 근대의 연속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는 성리학의 통치, 교화, 종교적 지배가 붕괴됨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중세와 근대는 단절적으로 사고되고 있었다. 이는 결국 인민의 탄생이 중세와 근대의 관계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게 하는 대목이었다.
또한 나종석 교수는 이에 더해서 인민의 탄생에서 한글 공론장의 성격도 일면적으로 규정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조선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적 가치관이 비단 지배층뿐만 아니라 기층에까지 확산되어갔음은 주지의 사실인데, 그렇다면 비양반 계층이 한글 사용을 통해 문해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형성된 한글 공론장이 한문 공론장과 심각하고 결정적인 갈등을 일으키거나 혹은 나아가 대안적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냐는 것이다. 결국 이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사회가 상상될 수 있음을 주장한 서구 사회과학 이론이 다소 단순하게 원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혐의일 것이다.
다음 토론자 이윤석 교수의 비판은 방법론에 대한 것이었다. 인민의 탄생은 연구 자료를 국사학과 국문학 연구, 한말 외국인 기록, 그리고 번역된 조선시대 문헌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는 송호근 교수가 발표 첫머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문으로 된 사료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한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과거 속의 풍경들이 내외국인들의 기록과 연구 속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 2차 문헌이 다시 송호근 교수의 연구에 반영되면서 변색되거나 덧칠이 가해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이윤석 교수는 문해인민의 양산, 한글 서적들의 유통 등 한글 공론장의 존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송호근 교수가 내세운 몇몇 핵심적 근거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취약한 토대를 가진 것일 수 있음을 재차 우려했다.
청중 토론에서도 핵심적인 질문은 계속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대한 분석에서 민족어가 등장하고 라틴어가 소멸되었던 유럽의 경험이나 하버마스의 공론장 등 서구 사회과학 이론 등이 감지된다는 점을 둘러싸고 비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거시적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서구의 이론이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또한 사회학이라는 자신의 학문적 배경을 감안해 달라는 송호근 교수의 답변 역시 정당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날 계속 이어진 질문들은 결국 발표의 첫 부분에서 언급된, 사회과학 이론으로는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고유한 특질, 그리고 그 심원을 규명하고자 했던 송호근 교수의 문제의식이 연구방법 상으로도 모색되었으면 하는 기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정리한 바와 같이 이날의 토론은 꽤나 날카롭게 진행되었고, 몇몇 질문은 송호근 교수의 핵심적인 전제를 흔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민의 탄생은 근대적 시민의 형성 과정을 살피고자 하는 총 두 권으로 예정되어 있는 기획의 전반부에 속하며, 어떤 점에서는 후반부 연구의 배경으로서 제시되었음을 감안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송호근 교수가 그의 거시적 연구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을 때, 처음의 연구목표가 설득력 있게 달성될 수 있다면, 이날 제기된 문제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워크샵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가진 의문은 역사를 통해 현재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인민의 탄생처음의 문제의식과 중세적 지배질서의 붕괴와 더불어 근대적 인민이 탄생했다는 연구의 내용이 상충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를 해명하고자 하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사명에서 시작된 과거로의 여정에서, 송호근 교수는 어쩌면 현재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놓여있는 방을 잠근 채로 닫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우려가 불식될 수 있을까? 많은 질문들과 함께 송호근 교수의 후속 연구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