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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4 09:00
제목 [참관기] 제 32차 사회인문학 워크숍 - 한국 근대 개성 상인의 문예전통과 지역사회 운동

 

 

 

제 32차 사회인문학 워크숍 참관기

한국 근대 개성상인의 문예전통과 지역사회 운동

 

 

국학연구원 한영인

 

 


    2015년 3월의 마지막날,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발표실에서 제 32차 사회인문학 워크숍이 열렸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계신 노관범 선생님께서 <한국 근대 개성상인의 문예전통과 지역사회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맡아주셨다. 노관범 선생님께서는 최근 1714년에서 1954년까지 전환기 우리 고전에서 발굴한 뜨겁고 매혹적인 역사적 현장들을 담은 『고전통변』이라는 책을 내신 분이며 전통과 근대를 단절적으로 인식하는 풍토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제기한 소장 학자이기도 하다. 여전히 근대주의적인 인식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지성사’라는 관점을 통해 어떻게 전통과 근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노관범 선생님의 발표는 최근 연구한 세 편의 글을 아우르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하지만 차분하고 조리있는 설명 탓에 선생님의 핵심 주장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이 작업은 ‘지역 지성사’라는 생소한 분야에 속한다. 노관범 선생님의 연구는 지역 지성사의 한 범례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조선 후기 개성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 후기 개성 유학에 대한 설명은 내가 막연하게 갖고 있던 통념과 대치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개성의 상업도시적 활력이 실학의 발흥과 연결되었음을 구체적으로 실증할 연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면서 18세기 이후 개성 지역의 지성사적 상황은 실학의 발흥이라기보다 차라리 성리학의 중흥에 가까웠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개성을 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도시로 보게 될 경우 그것과 근대 사회의 상호관계가 문제시된다. 사실 이번 사회인문학 워크숍에서 주로 초점을 맞췄던 것은 바로 이 문제였다. 노관범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공성학이라는 인물로부터 풀어나갔다. 식민지시기 개성의 대표적인 기업가였던 공성학이 개성 지역 사회에서는 유림이었고 동시에 한시를 짓는 대표적인 지역 문인이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공성학에서 김택영으로, 그리고 김택영에서 더 넓은 조선 후기 개성의 지성사로 탐구의 범위를 확장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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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결론은 이른바 ‘근대의 충격’이라는 명제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었다. 근대 개성 문인의 지역사회 운동을 통해 한국사에서 전근대 유교 전통과 근대 지역 사회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바, 그것은 바로 한국 근대 도시 지역에서 유교적인 지역 주체가 근대적인 주체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유교는 근대와 대비되는 혹은 그에 미달하는 ‘전통’, ‘과거’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한국의 근대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노관범 선생님의 발표에 이어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정욱재 선생님과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조경란 선생님의 토론이 있었다. 정욱재 선생님께서는 18세기 이후 개성 지역의 지성사적 상황이 실학의 발흥이라기보다 성리학의 중흥에 가까웠다는 논지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하지만 개성 유학의 실재상과 특징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오히려 개성 유학은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김택영에 의해 정리되고 재발견 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던져주셨다. 또한 노관범 선생님께서 깊이 다룬 공성학이라는 인물의 의식과 행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견해를 여쭈었다. 공성학은 자신의 스승 김택영과는 다르게 황도유학을 받아들이고 선전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협력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조경란 선생님께서는 짧지만 날카로운 여러 질문들을 제기해주셨다. 먼저 지역 지성의 개념에 대해 질문하고 개성 지역의 어떤 특성이 낙론과 결합했는지, 그리고 개성의 상인(문인)이 이 낙론을 받아들인 것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물었다. 그리고 노관범 선생님께서는 상인과 문인의 동시적 정체성이 개성 유학의 특징으로 꼽고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개성만의 특별한 점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질문도 던져 주셨다. 이 질문은 이후 홍성찬 선생님께서도 여러 차례 던지시며 이후 토론의 핵심적인 논점 중 하나가 되었다.

 

    문(文)과 상(商)의 결합은 과연 개성 유학의 고유한 특징이었던 걸까, 아니면 조선의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현상이었던걸까? 노관범 선생님의 작업은 이 부분을 잘 정리해주시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논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나 아쉬웠던 것은 선생님께서 유교와 근대의 관계를 파고들 여지를 미리 차단하신 점이다. 노관범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말하는 유교가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렇다면 에토스로서의 유교와 근대(적 주체)가 맺는 관계는 어떻했다는 것일까? 선생님께서는 “전통과 근대의 상호침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 상호침투의 구체적인 양상은 어떠했고 그 마찰의 질감은 어떠했는지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