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과 울림

국학연구원 바로가기

마을인문학 바로가기


작성일 : 15-02-28 14:32
제목 [참관기 ]HK 사업단 학술대회 - 비평 현장과 인문학 (재)편성을 둘러싼 풍경들

 

 HK 사업단 학술대회

 < 비평 현장과 인문학 (재)편성을 둘러싼 풍경들>

참관기

 

 

국학연구원 한영인

 


 

 <<비평 현장과 인문학 (재)편성을 둘러싼 풍경들 – 1970년대 혹은 「창작과 비평」을 경유하여>>는 4년여에 걸쳐 국학연구원의 지원으로 「창작과 비평」을 함께 읽은 여러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성과를 종합하여 펼쳐놓는 자리였다. 오랜 시간 동안 한 매체와 그 매체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역사적 맥락을 탐색한 결과가 응당 이러해야 한다는 듯이, 이날 제출되었던 논의들은 모두 저마다 개성적인 포착 지점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었다. 


  전우형은 「번역의 매체, 이론의 유포 – A.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번역과 차이의 담론화」에서 ‘창비’가 비평과 번역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했음을 강조한 뒤, 하우저의 번역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함으로써 ‘창비’의 번역 행위에 숨은 의미를 흥미롭게 해석했다. 거기에는 마르크시즘 문예이론을 유포함으로써 비평의 방향을 정립함과 동시에 한국의 정치경제적 현실에 대응하는 문학이론이 신생할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 당시 창간 주체들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토론자 박지영은 로렌스주의자인 백낙청이 196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이러한 주장을 위해서는 조금 더 확고한 논거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전우형의 흥미로운 발표에 이어 정재석은 「민중의 세계와 토속의 언어」에서 1970년대 ‘창비’가 제출한 ‘민족문학론’에서 ‘토속’이 가지는 중요한 위상에 주목해야 함을 역설했다. 정재석은 ‘창비’의 필진들은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위기와 파탄에 대한 감각에서 바라보았으며 이는 당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도시화에 따른 삶과 문화의 동시적 위기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인식을 통해 비로소 농촌이 새로운 문화적 의미로 떠오를 수 있었음을 논구했다. 정재석은 이러한 토속어의 이중적 성격에 대해 지적하며 앞으로 ‘창비’ 등에서 나타나는 토속어의 정치학에 대해 더욱 정치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발표를 끝맺었는데, 앞으로 이와 관련한 그의 후속 연구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발표였다.


  4년여에 걸친 세미나 모임의 풍요로움을 증거하듯 흔치 않게 2부는 장소가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래서 부득이 외솔관 02호에서 진행된 발표와 토론은 참관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커다란 아쉬움이 남는다. 부득이하게 여기서는 01호에서 진행된 발표에 대한 참관기만을 적기로 한다. 


  01호에서 진행된 2부는 신주백, 송은영, 박연희가 각각 <관점과 태도로서 내재적 발전을 둘러싼 학문장의 풍경>, <1970년대 『창작과비평』의 민족문학론과 민중론>, <1970년대 제3세계문학론과 보편주의 – 김우창과 『세계의 문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를 진행했다. 세 발표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박연희의 발표였다. 이날 학술대회의 초점이 ‘창비’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우창과 『세계의 문학』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창비’의 제3세계문학론과 『세계의 문학』의 세계문학, 혹은 보편주의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시야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박연희는 특히 <부록>에서 『세계의 문학』에 수록되었던 세계문학 소개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제출해줌으로써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자하는 동학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70년대의 문학적 지형이 ‘창비’와 ‘문지’로 이분화되어 인식되고 그 인식이 각종 연구들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세계의 문학’과 김우창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착수한 이 작업의 향방이 자못 궁금해졌다.

 


noname01.jpg

 

  3부를 위해 다시 외솔관 01호에 모두 모였다. 3부에서는 김항, 수잔 황, 김나현이 각각 <‘리얼한 것’의 정치학 : 1960년대 말 한국의 리얼리즘론>, <백낙청, D.H. 로런스, 그리고 반체제적 문학 담론의 출현>, <김수영 전후, 시비평의 지형 - 『창작과비평』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수잔 황의 발표였다. 나 역시 ‘창비’로 석사논문을 쓸 때, 백낙청과 로렌스의 관계 - ‘창비’ 지면에서는 종종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경유하여 나타난 – 에 주목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논문 쓸 당시에 <<무지개>>,<<아들과 연인>>, <<채털리부인의 사랑>>과 같은 로렌스의 장편 소설들을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잔 황은 백낙청의 로렌스 읽기가 통념적인 서구의 이해와는 다른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이것이 순수히 학제적이거나 학문적인 목적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촉구의 입장에서 진행된 것임을 지적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그간 알려진 사실의 확인에 그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탐구가 백낙청 및 ‘창비’ 담론을 ‘반체제적 문학 담론’이라는 틀로 조망하는 도정에 선 것이라면, 백낙청의 영문학 연구에 대한 조금 더 핍진한 분석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펼쳐진 여러 발표들에 대한 토론자들의 지적 역시 날카로웠다. 세부 발표에 대한 토론은 생략한다 하더라도, 류준필의 말은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듯 했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그날의 발표들은 발표 주체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명 ‘창비’를 특권화 시키는 작용을 했다. 다른 토론자 천정환 역시 이미 연구자들에게 편안한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은 창비를 계속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른 목소리들에 주목하고 그것들을 찾아나서려는 모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비’를 주어로 삼아 1970년대 지성사와 비평 현장을 탐색하는 것 역시 무척 의미있고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지만, 그 작업은 동시에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로 넘어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의 발표는 앞으로의 여러 작업들을 위한 튼실한 디딤돌의 역할을 잘 수행했던, 알차고 뜻깊은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