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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7 11:39
제목 [에세이] 효용성 최고의 고전, 맹자(孟子)


효용성 최고의 고전, 맹자(孟子)

 


김영봉(연세대 강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논어(論語)맹자(孟子는 유가(儒家)의 경전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의 정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쌍벽을 이루는 필독서이다. 그러나 두 저술은 대표적인 유가 경전이면서도 내용과 형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형식상으로 논어는 단문(短文) 위주이고 함축적인데 비해 맹자는 이야기 위주의 장문(長文)이고 내용도 구체적이며 완결성이 높다. 이러한 외형적인 차이는 도가(道家)의 대표적 경전인 노자(老子)장자(莊子)의 관계와 매우 닮아 있다. 논어노자의 서술 형식을 닮았고 맹자장자의 형식을 닮았다. 장자의 논적에 혜자(惠子)가 있었다면 맹자의 논적에는 고자(告子)가 있었다.

논어는 문법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많다. 논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해설이 필요한 반면 맹자는 본문만으로도 비교적 이해가 충분하다. 논어의 본문은 16천자에 조금 못 미치지만 주자(朱子)의 해설인 집주(集註)는 그 3배가 훨씬 넘는 6만 여자에 이른다. 맹자본문은 35천 여자인데 집주는 2배가 못되는 6만 여자이다. 논어는 함축이나 비유적 표현 때문에 해설에 다양한 견해가 있으며, 한문 공부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유용한 문장이 아니다. 종합적인 측면에서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논어맹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그 효용성, 유용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맹자가 더 앞서는 측면도 있다. 문장이 문법적으로 훨씬 정제되어 있어 소위 문리(文理)가 나는데 있어서 논어보다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문 글쓰기는 논리적 전개가 핵심이다. 부분적으로는 문법이 허술해 보여도 전체적로는 매우 치밀한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논어의 문장은 앞에 언급한 속성상 치밀한 논리적 글쓰기의 교재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에 비해 맹자는 대화체 문장이 많은데 논리적 전개가 발달되어 있어 문장을 익히는데 매우 유용하다. 예로부터 맹자를 읽고서 문리가 난다는 말이 널리 통용되었다. 그 논리성 때문에 논술 공부하는데도 매우 효용성이 높으며, 실제로 논술 문제 지문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맹자에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호연지기(浩然之氣)’, ‘자포자기(自暴自棄)’ 등의 성어를 비롯해서 조장(助長), 농단(壟斷) 등 현대의 국어 생활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수많은 단어의 출전이기도 하다.

맹자의 내용적 가치는 사단칠정(四端七情), 성선설(性善說) 등 유교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점에도 있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는 민본주의(民本主義)를 표방했다는 데에 더 큰 가치가 있다. 군주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면 백성들이 하늘을 대신해서 그를 몰아낼 수 있다는 혁명(革命) 사상은 원래 유가에서 인정하는 것이지만, 맹자는 이를 다른 차원에서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벼운 것이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명쾌하게 단언하고 있다.

맹자가 워낙 중요한 책이다 보니 이에 얽힌 선인들의 일화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 관한 것이다. 유성룡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나고 후대에도 역사상 유명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형님 유운룡(柳雲龍)이 세상에는 덜 알려졌어도 훨씬 더 근후(謹厚)한 품성의 숨은 실력자였다. 유운룡이 유성룡을 경계시킨 일화가 몇 가지 전하는데, 맹자에 얽힌 내용이 재미있다. 유성룡이 젊었을 때 유운룡이 아우에게 네가 관직에 나가 올바른 정치를 하려면 맹자3백 번은 읽으라. 그래야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는 요지의 당부를 하였다. 그래서 작정하고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한 2백 번 쯤 읽으니 전체를 훤히 외워서 막힘이 없었다. 이에 유성룡은 형님이 나를 너무 걱정한 나머지 노파심에 3백 번 읽으라고 하신 것이겠지. 이제 맹자는 충분히 외워서 더 이상 읽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책을 덮었다. 나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나라의 중신으로 여러 가지 일처리를 하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닥쳤다. 유성룡은 그때서야 내가 형님 말씀대로 맹자3백 번만 읽었어도 이런 일을 어렵지 않게 잘 처리할 수 있을 텐데……하고 후회했다고 한다.(구전으로 전하는 설화여서 숫자에는 다른 설들이 있다.)

송시열은 맹자1천독() 했다고 소문이 났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학자이지만 1천독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는 제자 한 사람이 확인하고 싶어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인지 물었다. 송시열은 내가 젊었을 때 작정하고 들어 앉아 읽은 것만 5백독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모두 합하면 1천독 쯤 되지 않겠느냐. 더구나 앞부분은 늘 자주 보아서 1천독이 훨씬 넘는다.”라고 하였다.

송시열의 일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옛날의 유명한 학자들도 앞부분은 많이 보지만 뒷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 일반인들도 거의 예외가 없는 현상이다. 또 개인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문 교육 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사 일정상 제한된 기간 안에 교재를 공부하다보면 늘 뒷부분은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사계(斯界)의 최고 대가인 성백효(成百曉)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예전에통감절요(通鑑節要)같은 필독서도 대부분 앞부분만 읽고 뒷부분은 거의 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에 따라 후대의 글에 인용되는 정도도 뒷부분은 빈도수가 매우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기본 경전의 경우는 뒷부분이라고 해서 앞부분과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송시열 같은 경우야 수백 번 읽어서 완전히 외워버린 정도니까 앞부분과 뒷부분 읽은 정도에 차이가 나도 별 문제가 아니지만, 이제 입문 단계인 사람들이 한두 번 공부한 상황에서는 늘 앞부분만 읽다가 말아서는 안 된다. 한문 공부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반드시 끝부분까지 충실하게 공부해야 함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