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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7 11:36
제목 [에세이] <사기(史記)>의 다이제스트, <사기영선(史記英選)> 읽기


2016년 1학기 
무악서당 동양고전강좌 <사기영선(史記英選)> 



<사기(史記)>의 다이제스트, <사기영선(史記英選)> 읽기

이주해(연세대 중문과 강사)

  3월부터 꼬박 세 달 동안 <사기영선>을 읽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늦은 저녁에 모여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전 강독을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는’ 사람은 그나마 낫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소 연로한 나의 학생들에게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사실 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숱한 고민을 했다. ‘강독’ 형식의 수업은 목적이 뚜렷하다. 한문 독해 능력을 키워주는 것. 하지만 대학에서까지 일종의 ‘기술’ 전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찜찜함이 있었던 데다가, <사기>는 그렇게 강독만 하고 끝내기엔 담고 있는 이야기이며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민거리며 되새겨야 할 의미가 너무 많은 책이었다. 그래서 강독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곁가지 이야기를 많이 가져갔고, 부교재도 활용하며 <사기>의 묘미를 공감하고자 나름 애는 썼다. (그러다 보니 진도가 영 느리다.)
  사마천이 죽음보다 치욕스런 고통을 견뎌가며 살아간 이유는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사기>는 평생의 아픔과 한을 모두 쏟아 부은 삶의 결정체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일시의 분에 못 이겨 죽음을 택한 자보다는 살기를 택해 자신의 뜻을 밀어붙인 사람을 성패와 관계없이 지지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을 위해 지어준 전기이지만 곳곳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은 책, <사기>는 중국의 기전체(紀傳體)를 확립한 사서(史書)이기도 하지만 책 전체가 사마천의 전기요 화려한 수사법으로 선염된 문학 창작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텍스트는 <사기>의 다이제스트라 할 수 있는 <어정(御定) 사기영선>이다. ‘어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을 선별한 이는 조선의 임금 정조이며, 편찬한 해는 정조 21년(1797년), 교정과 교감을 맡은 이는 다산 정약용과 초정 박제가이다. <사기> 130편 중에서 모두 27편을 선별, 수록하였다.(<한서>에서도 8편을 골랐다.) 그렇다면 작품 감식안은 고스란히 정조의 것이 될 터, 책에 수록된 내용들은 정조의 기호 내지는 사상적 경향을 드러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천한 장사꾼들의 이야기 「화식전」을 넣은 것에서도 정조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영선>은 백이(伯夷), 굴원(屈原), 오자서(伍子胥) 등 비극적 인물부터 전국시대 사공자(四公子) 및 불세출의 지략가들에 이르기까지, 제국 건립을 위해 길항하던 한 시대의 영웅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요즘 사람들이 책 한 권을 다 읽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선본을 통해 그 근원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정조의 뜻이 이 인물들에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작품으로는 우선 맨 앞에 실린 「항우본기(項羽本紀)」를 들 수 있다. 황제가 되지 못했음에도 본기에 들어간 인물 항우는 수많은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는데, 그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항우본기」이다. 보통 <사기>를 강독하다보면 열전(列傳)에만 국한되기 쉬운데, <영선>에는 본기 및 세가(世家)도 포함되어 있어 보다 제왕과 제후들의 세계를 엿보기에 좋다.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항우본기」는 서사 스케일도 남달라서, 수십 만 병사가 한데 어우러져 싸우기도 하고, 배와 솥과 시루를 모두 강에 빠뜨려버리기도 하며, 시체에 막혀 강물이 막히는가 하면 십만 명이 생매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면초가’와 같은 장면은 가급적 과장된 표현이나 심리 묘사를 자제하고 담담한 서술로 일관함으로써 항우의 비극적 최후를 고조시킨다. 사마천의 문재(文才)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영선>에는 「자객전(刺客傳)」 중 형가(荊軻)와 섭정(聶政)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다. 그중 형가가 역수(易水)에서의 마지막 이별 파티를 뒤로하고 진시황 암살을 위해 연나라를 떠나는 장면에서는 고독한 자객의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연암 박지원은 사마천이 항우와 자객 이야기를 쓸 때의 심리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 낼 수 있습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든 채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하고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나비가 그만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어,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하지요.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입니다.”(「경지에게 답하다.(答京之)」) 나비 잡는 아이의 마음. 한 권 한 권, 사마천의 이런 마음을 간파해가면서 강독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정사년에 새로 찍은 <사기영선>은 10월 초파일에 읽기 시작해 다다음달 27일에 완독하니 80일이다.” (정조의 독서기)
정조는 80일 만에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아마 1년은 족히 걸릴 듯싶다. 남은 시간 동안, 지기(知己)에 목말라했던, 팔로우십에 목말라 했던 사마천에게 2천년 뒤에 나타난 든든한 지지자가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