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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6 10:46
제목 [학술대회 리뷰] 국학연구원-연변대학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 국제학술대회



21세기 동아시아와 한국학의 과제

- 국학연구원 / 연변대학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 국제학술회의 참가기

 

 

이기훈 (국학연구원 HK 교수)

 

 

황금연휴의 첫날, 인천국제공항은 혼잡했다. 발디딜 틈이 없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넓은 공항 전체에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장사진이 가득했다. 일행 모두 약속 시간보다 10분씩은 일찍 도착해 기다리는 쪽이 마음 편한 사람들이어서, 항공편 출발 예정 시간보다 2시간 20분쯤 전에 모두 만나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이 워낙 많아 시간이 빠듯했다. 대기 중인 일행은 우연히 서울대 종교학과 셈 베르메르쉬 교수를 만났는데, 워낙 줄이 여러 번 꼬여 있다 보니 마주칠 때마다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보안검색과 출국심사까지 다 통과하고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니 막 탑승을 시작하고 있었다.


201655일 오전, 우리는 국학연구원과 중국 연변대학교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 공동체와 조선-한국 문화의 다양성>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했다. 인문대학장 백영서 교수(이하 존칭은 생략), 국학연구원장 도현철 교수, 부원장 최연식 교수, 국학연구원 최기숙 교수와 필자가 같이 출발했고, 김동노 교수는 다른 항공편을 이용해 연변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출발하는 공항에서 우리가 마주친 풍경은 왜 이런 논의를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들도 많았지만, 꽤 많은 중국인, 일본인 여행객들도 돌아가는 길이었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중국으로 가는 항공편에는 당연히 조선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미 한국사회 속에 들어와 있는 세계’, 그리고 세계 속으로 연결된 한국은, 엄연한 현실이며, 이 변화된 상황 속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세계와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학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다. 또 한국학은 이미 한국인들만의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공항에서 만난 베르메르쉬 교수는 영국 출신 학자로 고려시대 불교가 전공인데, 미국 학술대회에 참가하러 간다고 했다. 동아시아, 한국, 세계가 어떻게 만나는지 착잡한 생각 가운데, 비행기는 연변 공항에 도착했다.


연변공항은 광주공항 같은 한국의 지방공항과도 비슷한 느낌을 들게 했다. 규모도 그렇고, 최근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그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비슷했다. 계속 확장되는 고속철도는 거대 국가 중국의 일상생활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고속철도로 연길에서 선양까지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전에 거의 2~3일 걸리던 출장, 회의를 하루에 끝낼 수 있게 되었단다. 고속철도만이 아니라 연길 시내 곳곳에서 아파트와 빌딩 등 고층건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연길시는 이렇게 급속도로 팽창하고는 있지만, 최근 연변의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도시나 한국으로 인구 유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팽창, 교류의 확대가 지역의 원래 사회 문화적 특성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는데, 그것이 대표적인 한인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남의 일 보듯 할 일은 아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점심 식사 이후 연변대학 총장 면담이 있었다. 1949년 지었다는 연변대학 본관으로 찾아 갔다. 지레짐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문대학 학장과 기획실장이 발표진에 포함되어 있었던 탓인지 연변대학 측에서 각별히 예우에 신경을 더 쓰는 것 같았다. 연변대학의 박영호 총장은 남북한과 모두 교류가 가능한 연변대학의 특성을 더욱 발전시켜 국제적인 연구와 교류 중심을 이루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예정 시간을 넘기면서 백영서, 김동노 교수의 조언을 진지하게 들었으며, 특히 김동노 교수가 제안한 한국 학자의 연구 방법론 특강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배석했던 채미화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 주임은 그 자리에서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학술대회 연변대 측 책임자이기도 한 채미화 교수는 대단한 기획력과 추진력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좋은 기획이라고 판단하면 그 자리에서 기초적인 방향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법까지 논의를 이끌고 가는 박력이 대단했다. 총장 면담이 끝난 뒤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을 방문했다. 이 센터는 연변대학, 중국 사회과학원, 텐진의 난카이(南開) 대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선도하고 있었다. 국학연구원과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은 상호 해외연구기지를 제공하도록 협약을 맺었고, 이날 국학연구원 해외 연구 기지 현판식을 가지고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512일에는 본교에서 두 연구기관이 함께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 해외연구기지 현판식을 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5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변대학교 본관 4층 회의실에서 학술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는 두 학교 외에도 중국사회과학원과 요녕대학교 연구자들이 토론자로 참가했다. 채미화 주임과 도현철 원장의 개회사와 축사에 이어 백영서 교수가 경계를 넘나드는 한민족과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주제로 기조 발제를 했다. 현재 한국사회 내부, 북한과 남한, 세계 각지의 한인공동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까? 백교수는 동아시아 한인공동체들이 교류하며 만드는 새로운 정체성이 분단체제를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어 본격적인 학술 발표가 진행되었다. 오전 1부에서는 먼저 연변대학 김경훈 교수가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흐름이라는 주제로 일제 하에서 현대까지 대표적인 조선족 시인들의 작품활동과 시대적 특징들을 조망했다. 늘 소중하게 여기는 윤동주의 작품도 조선족 문학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면서, 한국 밖의 한국 문화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새삼 깨닫게 된 발표였다. 연세대 사회학과의 김동노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체와 역사의 화해라는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억의 차이와 갈등을 정의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을 통해 형식적 정의의 실현으로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접근한 반면, 한국인들은 실질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실질적으로 공통된 역사인식으로 합의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시간과 관점의 상대화’, 역사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역사를 성찰하는 자세를 통해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로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연변대 정치와 공공관리학원 리홍군 교수는 철학적 시각에서 보는 현대 중한 영국 문화 정신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한국 문화의 동일성의 요소들을 분석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확대되는 현상을 설명했다.


오후 2부에서는 동아시아 사상과 공동체의 문제에 관한 발표가 진행되었다.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의 우상렬 교수는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현대적 가치라는 발표에서, 동아시아의 유교, 불교, 도교적 전통이 여성적 문화이며, 서구의 기독교 전통을 남성적인 문화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세계는 여성적인 동아시아 문화를 기반으로 동서양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국학연구원의 부원장인 최연식 교수는 정치시민, 세계시민, 그리고 군자시민이라는 발표를 통해 동양의 정치사상적 전통을 수용한 군자(君子)’ 시민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서구의 근대적 시민 개념이 가지는 해방과 진보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개인주의와 배타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세계시민주의도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한계는 물론, 새로운 제국주의의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서구적 논의들은 결국 동심원의 중심으로서 개인에게서 출발한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중심으로 주체를 재구성하는 동양적 타원의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연변대 인문사회과학학원의 허명철 교수는 문화적 시각에서 보는 운명공동체의 구축이라는 주제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역사를 검토하고, 그 현실적 필요성과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는 동아시아라는 지역 공동체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민족적 구분과 한계를 초월한 인류적 관심과 연대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신인본주의야말로 새로운 공동체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비교적 실증적인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국학연구원의 최기숙 교수는 <쌍옥루>를 통해 본 번안의 근대와 동아시아 공감대의 형성>을 발표했다. 최교수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감성 연구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초기 지식인들이 외국의 소설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번안하는 과정을 󰡔매일신보󰡕에 연재된 소설 <쌍옥루>의 사례를 통해 분석한 것이다. 특히 일본 원작 소설과의 꼼꼼한 비교를 통해 배경이나 사건 등을 재맥락화하는 과정을 일일이 제시함으로써 감성과 정서의 근대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조선반도연구협력창신중심의 부주임인 리매화 교수는 <중국 조선족의 초국적 이동과 개인적 삶의 변화>라는 주제로 한국으로 들어온 조선족들의 삶과 조선족 커뮤니티의 변화를 추적한 연구를 발표했다. 심층면담을 통해 이동한 이들의 생활과 심리, 가족관계, 중국의 조선족 사회, 한국에서 조선족 커뮤니티의 형성 등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이기훈은 <1920년 한국 민족주의의 중국/중국청년 인식>이라는 주제로 일제 시기 한국에서 󰡔동아일보󰡕 등 언론들이 중국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 시기 중국관련 기사 분석을 통해 열광과 무지의 공존이라고 할 만한 이 시기의 중국관련 인식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한국 지성과 민족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다시 살펴보고자 했다.


발표가 끝난 뒤 진행된 종합토론에서 논의 핵심은 동아시아란 무엇인가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흔히 한(남북한),,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사회과학원의 박건일 연구원은 중국 중앙 정부의 입장에서 몽골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동노 교수는 타이완이 논의 구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였던 터라, 채미화 주임이 학술회의 말미에 이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새삼 강조하는 것으로 정리해 버렸다. 오늘날의 세계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동체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유동적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논의를 포기할 수도, 정의에 대한 문제만 따질 수도 없다. 현실 속에 동아시아 세계는 점점 더 활발히 교류하고, 한인 커뮤니티들도 더욱 활발해지고 복잡해진다. 백영서 교수가 강조한 것처럼 현실의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를 정의하고 논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한국 또는 조선을 어떻게 정의해야 되는지를 깊이 논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 민족이라고만 규정해온 한인의 다양한 커뮤니티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언어나 문화, 역사 등 전통적인 동일성의 지표들은 점점 약화되고 있고, 심지어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전의 학문적 전제와 가설들을 뛰어넘어 진행되고 있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확산과 분열에 대해 새롭게 정의하고 분석하는 것, 오늘날 한국학의 고민이자 과제이다. 이번 국제학술대회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역을 막론하고 한인 연구자들이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